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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021_韓史-左右派  

中央日報 特別採訪組 | 2013.10.21 13:21

「請想象一下,如果在教授美國歷史時,華盛頓(George Washington)粗略地出現,甚至都未介紹是第一位總統。如果提到主導女權團體——全美女性機構的創立,卻不提及美國議會的開始…。」

這就是1994年10月20日「華爾街日報」上登載的題為「歷史的終結」的文章的開頭。這是在美國議會選舉三周前,美國前副總統切尼的夫人琳·切尼(音,Lynne Cheney,美國文學人基金主席)的投稿。她從正面批判了作為小學和中學歷史教育指南的「歷史標準書」。這是使美政治圈和學界、教育界兩分化的歷史教科書戰爭的信號彈。議會選舉是共和黨取得壓倒性勝利。1995年1月,參議院以99:1通過了歷史標準書批判決議。經過1年零6個月間的論戰以後,編輯人員推出了添加對華盛頓等「建國之父」介紹的修訂版。

 

2004年,在韓國也圍繞著教科書掀起了一場歷史論戰。金星出版社編纂的「韓國近現代史教科書」被保守陣營批為左傾。在南北對峙的情況下,論戰更加激烈。2013年又展開一次教科書論戰。此次,有保守傾向的教學社教科書重新出版,攻守就發生了變化。

這是反復出現的「歷史教科書陣痛」。這是在解放以後曾非常嚴重的左右理念對立的翻版,是韓國政府誕生以來的60多年裏一直持續的論戰。

從解放後開始到1972年為止韓國歷史執行的是檢查認可制度,在朴正熙政權的維新體製(72年10月)上台的同時,成為國策項目,只將國家公認的歷史記錄在教科書上。共產黨被描寫成為「長角的怪物」,社會主義相關書籍全都成為禁書。

20世紀60年代,在美國哈佛大學攻讀俄羅斯歷史的首爾大名譽教授李仁浩表示「蘇聯1956年開展了對史達林的批判運動,但在蘇聯被廢棄的書作為80年代韓國運動圈 (指進行社會改革和變革運動的人) 的教材使用,這是愚昧的反共教育所帶來的副作用」。在這個情況下,現代史成為了歷史學界的死角,解放以後,左右對立、南北分裂、軍事政權的上台等是敏感的主題。70年代的史學家們既不研究也不教授現代史,他們回避道 「至少要在100年後才能進行評判」

被當時學界置之不理的現代史研究就成為了左派運動圈的專有物。前韓國歷史編纂委員會李成茂表示「韓國近現代史幾乎都被左派占領了。以後不管是講課還是論文,不左傾是行不通的」。

 

→pian:

80年代後半開始,韓國史學界掀起一股研究社會主義的熱潮(←這句話是真的,根據一些書或學者的分析與記載)

而現在目前大多研究歷史的學者們,都是那個時期學韓國歷史的人們(←這句倒是我們教授常在說的)。

我看那些學者的年紀,推斷一下,差不多那個時候的年紀都是上大學或是讀研究所的時期。

 

 

歷史學界的左傾趨勢發展為2004年金星出版社的「韓國近現代史教科書」左傾論戰。從此時開始,右派的反擊正式開始。

右派的反擊是隨著冷戰解體後,前共產圈秘密文件公開開始的。右派重新解讀了現代史,重新評價了以左傾視角貶低的韓國建國、韓國戰爭和前總統李承晚和朴正熙前總統等人。金星出版社的「韓國近現代史教科書」一出版,2004年右派就批判其為左傾。2006年出版的「解放前後歷史的重新認識」就是象徵著右派反擊的代表性事例。2013年推出了具有保守傾向的教科書。

今年的教科書大戰更加混亂。有保守傾向的教學社教科書內容在公開之前就出現了「將安重根描寫為恐怖分子」等毫無根據的歪曲事實。現任國會議員還展開政治攻勢,稱「用此教科書學習的話高考時會有一半題做錯」。這是對「保守的反擊」進行的「進步的再反擊」。

 

在歷史學界,左派的控制力非常大,這也是封閉的反共教育的後遺症。已經在世界知識界被判明為過時的左派理論,在20世紀80年代韓國才較晚獲得力量。追隨北韓的NL(民族解放)和主思派(主題思想派)甚至占據了大學街運動圈的霸權。主要大學和學會等整個歷史學界都受到了左派的影響。

雖然右派的反擊和左派的再反擊翻來覆去,但這種論戰未能發展成為成熟的學術論戰。理念性向較強的部分媒體和政治圈在學者之前,助長了消耗性的政治鬥爭。

對這樣的「混戰」,學界也出現了警惕的聲音。一直以進步視角解釋韓國現代史的前成均館大學教授徐仲錫表示「在解放後有左右鬥爭,到80年代為止有依據強大的國家權力的反共意識形態。我們沒有順利理解近現代史的條件。不管是左派還是右派,都要繼續學習。像現在這樣,發生歷史混亂時,只能堅守事實。進步勢力也要更接近事實,保守勢力也要堅守事實」。徐教授還補充說道「正如批判李承晚和朴正熙獨裁那樣,也要批判北韓製造的事端」。

 

國民聯合市民運動共同代表、首爾大名譽教授安秉直表示「請看看歷史系最近20年間的碩士和博士學位論文。基本上沒有什麽社會經濟史或政治史,大部分都是運動史,是立足於抵抗的民族主義的左傾」,「可以左右視角寫很多韓國史。是韓國歷史體系還是運動史體系,這是選擇的問題。我認為現在要立足於全球主義自由主義才能更好地書寫韓國歷史。這需要對此進行學術論戰。迄今為止還沒有這種場合」。他還指出歷史教科書論戰過於與政治聯繫在一起的現象。

 

韓神大學教授尹平重(哲學)強調稱「歷史教科書論戰過於政治化了。因為這與現實的政治勢力連接在了一起。他們大部分都不是專家。即使如此,為獲得權力和執政,動員『歷史教科書論戰』。首先要繼續創造在歷史學界內部進行第一輪探討和議論的機會。要在那裡進行論戰,要在那裡進行過濾,尋找折中點」。

在德國攻讀西洋史的京畿大學金基鳳(史學)警告稱「沒有必要害怕歷史爭論。這是實現國民共識的過程。問題是在歷史論戰導致歷史戰爭時發生的」,「利用歷史作為現實權力鬥爭武器的『歷史政治化』就存在問題。那樣會有很大的後遺症」。

 

出處:http://chinese.joins.com/big5/article.do?method=detail&art_id=110655

 

 

 

原文:

[이슈추적] 기억하려는 역사만 썼다 … 좌·우, 교과서 전쟁 60년

[중앙일보] 입력 2013.10.21 00:59 / 수정 2013.10.21 09:21

http://joongang.joins.com/article/516/12909516.html

한국사 8종 교과서 논란 분석
60·70년대 반공 교육 우편향
80·90년대 건국 폄하 좌편향
2000년대 들어 우파의 반격

“상상해 보라. 미국사 수업에 조지 워싱턴이 어렴풋이 나오고, 초대 대통령으로 소개조차 안 된다면 말이다. 여권 단체인 전미여성기구 창립은 다루면서 미국 의회의 시작은 언급되지 않는다면….”

 1994년 10월 20일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역사의 종말’이란 글의 첫머리다. 미국 의회 선거를 3주 앞둔 시점이었다. 체니 전 부통령 부인 린 체니(미국문학인기금 의장)의 기고다. 그는 초·중·고 역사교육 지침서인 ‘역사 표준서’를 정면 비판했다. 미 정치권과 학계·교육계를 양분시킨 역사 교과서 전쟁의 신호탄이었다. 의회 선거는 공화당의 압승이었다. 95년 1월 상원은 역사 표준서 비판 결의를 99 대 1로 통과시켰다. 1년 6개월간의 논쟁을 거친 이후 집필진은 조지 워싱턴 등 ‘건국의 아버지’에 대한 소개를 보강한 개정판을 내놨다.

 2004년 한국에서도 교과서를 둘러싼 역사 전쟁이 벌어졌다. 금성출판사가 펴낸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보수 진영이 좌편향이라고 공격했다. 남북한이 대치하는 상황이라 논란은 더 격렬했다. 2013년 또다시 교과서 전쟁이 벌어졌다. 이번엔 보수 성향의 교학사 교과서가 새로 출간돼 공수(攻守)가 바뀌었다.

 반복되는 ‘역사 교과서 몸살’이다. 해방 이후 극심했던 좌우 이념 대립의 복사판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탄생한 이래 60여 년간 계속돼 온 논란이다.

 해방 후부터 72년까지 검인정이었던 국사는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72년 10월) 등장과 함께 국책 과목이 됐다. 국가가 공인한 역사의 기억만 교과서에 기록됐다. 공산당은 ‘뿔 달린 괴물’로 묘사됐다. 사회주의 관련 서적은 모두 금서(禁書)였다.

 60년대에 미 하버드대에서 러시아사를 전공한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소련에서는 56년 스탈린 격하 운동이 벌어졌다. 그런데 소련에서 폐기된 책들이 80년대 한국 운동권 교재로 쓰였다. 몽매한 수준의 반공교육이 낳은 부작용이었다”고 말했다. 이 와중에 현대사는 역사학계의 사각지대가 됐다. 해방 직후 좌우 대립, 남북분단, 군사정권의 등장 등은 민감한 주제였다. 70년대 강단의 사학자들은 현대사를 연구도, 교육도 하지 않았다. “적어도 100년이 지나야 평가 가능하다”며 기피했다.

 기성 학계가 방치한 현대사 연구는 좌파 운동권 진영의 전유물이 됐다. 이성무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한국 근·현대사는 거의 좌파에 점령당했다. 나중에는 강의고, 논문이고 좌편향이 아니면 통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역사학계의 좌편향 흐름은 2004년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좌편향 논란으로 이어졌다. 이때부터 우파의 반격이 본격화했다.

 

"역사를 권력투쟁 무기 삼는 역사의 정치화는 후유증 커"

우파의 반격은 냉전 해체 후 옛 공산권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시작됐다. 현대사를 새롭게 해석한 우파는 좌편향 시각으로 폄하됐던 대한민국 건국, 6·25전쟁과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등을 재평가했다.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나오자 2004년 우파는 좌편향이라고 비판했다. 2006년 나온 책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은 우파의 반격을 대표적으로 상징한다. 2013년엔 보수 성향의 교과서가 나왔다.

 올해의 교과서 전쟁은 더욱 혼탁하다. 보수 성향의 교학사 교과서 내용이 공개되기도 전에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로 그렸다”는 등의 근거 없는 왜곡이 난무했다. 또 “이 교과서로 공부하면 수능에서 절반은 틀린다”며 현역 국회의원이 정치 공세를 펴기도 했다. 보수의 반격에 이은 진보의 재반격이다.

 역사학계에서 좌파의 장악력은 상당하다. 폐쇄적 반공교육의 후유증이기도 했다. 이미 세계 지성계에선 철 지난 것으로 판명난 좌파 이론들이 1980년대 한국에서 뒤늦게 힘을 얻었다. 북한을 추종하는 NL(민족해방), 주사파(주체사상파)가 대학가 운동권의 패권을 차지할 정도였다. 주요 대학과 학회 등 역사학계 전반에 좌파의 영향력이 미쳤다.

 우파의 반격과 좌파의 재반격이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지만 이 같은 논란이 성숙한 학술 논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념 성향이 강한 일부 언론과 정치권이 학자들에 앞서 소모적 정쟁을 부추겼다.

 이 같은 ‘진흙탕 싸움’에 대해 학계에서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진보적 시각으로 한국 현대사를 해석해 온 서중석 전 성균관대 교수는 “해방 후는 좌우 싸움이 있었고, 80년대까진 강한 국가권력에 의한 반공 이데올로기가 있었다. 우리가 근·현대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여건이 없었다. 좌파든, 우파든 공부를 더 해야 한다. 지금처럼 역사적으로 혼란이 있을 때는 사실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다. 진보 세력도 사실에 더 다가가야 하고, 보수 세력도 사실에 매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또 “이승만 독재, 박정희 독재를 비판하듯이 북한이 저지른 일들도 당연히 비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민통합시민운동 공동대표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국사학과의 최근 20년간 석·박사 학위 논문을 따져보라. 사회경제사나 정치사는 별로 없고 대부분 운동사다. 저항적 민족주의에 입각한 좌편향”이라면서도 “대한민국사를 얼마든지 좌우의 시각에서 쓸 수 있다. 대한민국사 체계냐, 운동사 체계냐. 이건 선택의 문제다. 지금은 글로벌리즘과 자유주의에 입각해야 대한민국사를 제대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학술논쟁이 필요하다. 지금까진 그런 자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역사 교과서 논란이 지나치게 정치와 연계되는 현상도 문제로 지적된다.

 윤평중(철학) 한신대 교수는 “역사 교과서 논쟁이 과도하게 정치화돼 있다. 현실 정치 세력과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부분 비전문가다. 그럼에도 권력 획득과 집권을 위해 ‘역사 교과서 논쟁’을 동원하고 있다. 우선 역사학계 내부의 1차적인 토론과 담론의 장이 지속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거기서 논쟁해야 한다. 거기서 거를 건 거르고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에서 서양사를 공부한 김기봉(사학) 경기대 교수는 “역사 논쟁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건 국민적인 합의로 가는 통과의례다. 문제는 역사 논쟁이 역사전쟁으로 비화할 때 발생한다”며 “역사를 현실 권력 투쟁을 위한 무기로 이용하는 ‘역사의 정치화’는 곤란하다. 거기에는 큰 후유증이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별취재팀=배영대(팀장)·백성호·성시윤·천인성·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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